참 좋은 봄날
-구종현-
실비는 오지요.
꽃밭은 젖지요.
이제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꽃밭에 심은 옥수수 줄기를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갑니다.
기어가서 마침내
오를 수 있을 만큼 올라간 것일까요
이제 그만 하는 걸까요.
그쯤에서
알맞게 휘어진 잎사귀 하나
초록빛 꽃 붙들고 앉아
하루 종일 있을 모양입니다.
제 한 몸
잠적하기에는
참 좋은 봄날입니다.
♠ 시감상
바야흐로 봄입니다.
땅위에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생동하며
더 크게 더 예쁘게 자라기 위하여
부지런히 분주한 몸놀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는 이 봄날에
방관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 방관자는 다름 아닌 달팽이입니다.
아니 이 시를 쓴 시인 자신이기도 합니다.
방관자는 주위를 둘러보는 일도 없이
자신의 일만 함으로써 여유를 찾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바뿐 것들뿐이므로
자신도 여유롭지 못하게 되니 숫제 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실비는 오지요/ 꽃밭은 젖지요' 이 얼마나 방관자적인 표현입니까.
마지막 연 '제 한 몸/ 잠적하기에는/ 참 좋은 봄날입니다.' 의 표현처럼
우리도 이 봄날 살짝 잠적하여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을
숨어서 엿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전영관)
전영관
*문학박사, 시인, 아동문학가,수필가,문학평론가
*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1982년 동시부문)
* 계간 아동문학시대 주간 역임
*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역임
*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
* 아침의 문학회 회장
* 백지시문학회 회장
* 시집《너에게 가는 길》《나무들도 걸었을 거야》 외 다수
- 사진사 Photo by 벌레로 박덕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