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물명(器物銘)
기물명(器物銘)
  • 충청교육신문
  • 승인 2016.06.26 2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남교수의 힐링 인문학]

중국 고대 은나라의 시조 탕왕은 세숫대야에다.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글귀를 새겨 넣고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의 옛 선조들 역시 자기가 쓰는 세숫대야, 담배통, 신발, 거울, 칼, 벼루, 베개, 지팡이 등과 같은 일용잡기와 교감을 나타내는 글을 짤막하게 새겨 넣었는데 이것을 기물명(器物銘)이라고 한다.

옛 사람들은 왜 자기가 쓰는 기물(器物)에 글씨를 새겨(銘)넣었을까?
대량 생산시대인 오늘날과 달리 기물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옛날에는 그 기물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하고 귀했다.
그러다 보니 기물의 주인은 그 기물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애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하나의 기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자기를 잘 알아주는 지기(知己)로 삼고 그 기물에다 자기의 철학, 좌우명, 소망, 감정 등을 글로 새기어 그 기물과 교감을 나누었음이다. 옛 선조들의 기물명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 고려 무인시대 최고의 문인이었던‘이규보’는 벼루를 마치 평생의 고마운 벗으로 여기고 벼루에 다 글을 새겼다.
‘벼루야! 벼루야! 네가 작은 것은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너는 한 치 웅덩이에 불과해도 끝없는 내 상상력을 펼치게 돕고, 나는 여섯 자 큰 키에도 네 힘을 빌려 사업을 하는구나! 벼루야! 나는 너와 함께 가리니 삶도 너와 함께, 죽음도 너와 함께!(小硯銘)

• 이규보는 몸을 기대는 의자의 부러진 다리를 고치고서“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다리 부러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 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하랴.”라는 명(銘)을 새겨 넣었다.

• 재상을 지낸 이규보도 가려움만큼 참을 수 없었던지 그가 사용하는 효자손에다 이런 기물명을 새겨 넣었다.
“가려운 등 긁을 때엔 너무도 즐거우니, 혹은 여의(如意)라 하고 혹은 양화(痒和)라 부르기도 하네, 손가락 모양인데 손보다 편리하여 손닿기 어려운 곳도 마음대로 긁어주네”

• 영조시대의 문인인 이용후는 그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 이런 명을 새겨 넣었다.
“나무가 거꾸로 자라면 사람이 바로잡고 사람이 위태롭게 걸으면 나무가 부축해 준다.”(木倒生 人正之 人行危 木支之)

• 이용후는 벼루에다 벼루의 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렇게 새겨 넣었다.
“내 이름이 닳지 않는 건 네가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 19세기 학자였던 유신환은 어린 아들에게 나막신을 주면서 이렇게 새겨 넣었다.
“미투리 신으면 편안하고 나막신 신으면 절뚝거리지, 그래도 편안하며 방심하기보다는 절뚝거리며 조심하는 편이 나으니라.”

• 197Cm나 되는 이순신 장군의 장도(長刀)에는 이런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다.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 조선 정조 시대 실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이덕무는 베고 자는 목침에“군자가 베고 잘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善과 仁이 아니겠는가.”라는 명(銘)을 새겨 넣고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 옛 선조들의 기물명 철학과 지혜는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하겠다.
쓰고 있는 일용품을 단순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나와 함께 생활하는 반려자로 애착을 갖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그리하면 일용품을 소중히 여기어 아껴 쓰게 되며 그로 인한 경제와 자원절약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쓰고 있는 일회용품에 애착을 갖게 되면 저절로 그 일용품과 교감을 이루게 되어 옛 선조들의 기물명 처럼 그 일용품은 단순한 일용품이 아니라 인문학 대상이 되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철학과 정서가 풍부해 지게 될 것이다.

▴ 그렇다.
자기 물건 귀한 줄 모르고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기물명 철학과 지혜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


=============================================================================================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김충남의 강의 일정

⚫ 대전시민대학 (옛 충남도청)
- (평일반)
A반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 (토요반)
B반 (매주 토요일 14시 ~ 17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 인문학교육연구소
(매주 월, 수 14시 ~ 17시)

⚫ 서구문화원 (매주 금 10시 ~ 12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