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 아낌없이 주는 나무(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여덟 번째 이야기 – 아낌없이 주는 나무(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송영숙
  • 승인 2016.08.15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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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이야기 – 아낌없이 주는 나무(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줄거리 : 한 소년과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소년은 나무 그늘 밑에서 잠도 자고,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하면서 나무와 친하게 지낸다.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그 나무에서 나온 열매를 따서 내다 판다.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소년에게 열매를 내준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중년이 되었을 때 소년은 아예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든다. 나무는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몸통을 내준다. 시간이 더욱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되어 밑동밖에 남아 있지 않은 나무에게 찾아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나무는 그 소년에게 자신의 밑동 부분까지 내어주며 노인이 된 소년의 의자가 되어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우리에게 진정한 희생과 사랑에 대한 교훈을 준다. 소년의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짧지만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목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동화는 이기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와 착취 구조를 묘하게 나무의 이타심으로 감추어 놓는 것에 성공했다. 만일 제목이 ‘무엇이든지 다 가져가는 소년’이었으면 독자들이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것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제목을 통해 관점을 전환시킴으로써 본질을 흐려놓아 제대로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제목이 ‘은혜 갚은 까치’가 아니라 ‘복 받은 나그네’라고 한다면 독자에게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내용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산림 자원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무는 아낌없이 주지 않았다. 그저 인간만이 아낌없이 가져갔을 뿐이다.

 

이렇듯이 제목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기사 제목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이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자. 최근 사드를 성주 내 제3의 지역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같은 내용을 보수 측 언론과 진보 측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한번 보자. 먼저 보수 측에서는 기사 제목을 <사드 배치, 성주군內 새 지역 추천하면 적합성 조사> 라고 내보냈다. 그리고 진보 측에서는 <박대통령 사드, 성주군 ‘내’ 다른 곳 이전 검토 가능> 라고 내보냈다. 명확히 다른 제목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번 해석해보자.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성주군 ‘내’라는 표현이다. 보수 측에서는 그것을 한자로 표기해 놓았고 진보 측에서는 ‘내’라고 표기하면서 강조를 했다. 진보 측에서는 사드 배치가 결국은 성주군 안에 있다는 것이 변함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에는 뒤 문장을 보자. 보수 측의 문장을 두 개로 구분해야 하는데 ‘새 지역 추천하면’과 ‘적합성 조사’라는 문장이다. 이 경우 만일 다른 적합지가 ‘있다면’ 적합성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진보 측에서는 ‘이전 검토 가능’이라고 표현하면서 실제 다른 곳으로 결정될 여지가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정리하자면 보수 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만일 지금 결정된 부지보다 더 적합한 곳이 있다면 배치 변경을 고려해보겠다’라는 것이고 진보 측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같은 성주군 내에서 변경되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래서 언론보도는 양 측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보자. 최근에 30대 남성이 초등학생인 의붓딸을 수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다. 같은 기사인데 하나는 제목이 ‘초등생 의붓딸 성폭행 30대 남성 긴급체포’였고 어느 하나는 ‘초등생 의붓딸 성폭행 30대 탈북자 긴급체포’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양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전자의 경우 주로 한국의 치안 문제, 아동 학대 및 재혼 시 아이들의 양육문제에 관한 댓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대북관계, 탈북자 범죄 문제에 관한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정책학에서는 의제 형성 과정에 대한 논의가 있다. 그 중 외부주도형(outside initiative model)이란 모형이 있는데 이는 의제 형성의 촉발 원인을 외부(시민단체 등)에서 찾는 것이다. 즉 외부주도 모형은 정부 조직 밖에 있는 비정부 집단 등에 의하여 정책문제가 제기되고 이것이 국민들의 쟁점으로 확산되어 그 여론의 압력에 의해 정부가 공식의제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특별한 사건에 의해 촉발되는데 그런 사건은 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정리하자면 비정부 집단이 위의 두 기사 중에 어느 것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문제가 달라지고 따라서 정부의 해결 방안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국민이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옛날이야기로 돌아오자. 만일 우리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단지 나무의 이타적 희생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사회는 바뀌지 아무것도 않을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자원의 개발을 나무라는 ‘무생물’의 아름다운 희생으로 교묘하게 포장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물론 정작 이 이야기는 이타적으로 행동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소년의 이기심을 나무의 이타심과 대조하여 자기희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사실 이야기의 원래 제목은 The giving tree, 즉 그냥 ‘주는 나무’였다). 단지 제목이 사람의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로 조금은 비꼬아 해석했다. 아무튼 우리가 조금 더 포장의 눈속임에서 벗어나 사실 관계 자체에 대해 주목할 때야 비로소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아낌없이 주지 말자. 그 대신 왜 줘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자. 그 의문들을 통해 거꾸로 소년에게 교훈을 주자.

 

조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도서출판 큰글사랑 기획실장

주식회사 디엠에코 이사

『어쩌면당신은관심없는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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