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잊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
열 번째 이야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잊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
  • 송영숙
  • 승인 2016.09.18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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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이야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잊혀질 권리와 표현의 자유)

 

줄거리 : (삼국유사 버전)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처럼 길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단 한 사람, 그의 모자를 만드는 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답답해하다가 죽기 전에 도림사(道林寺) 쪽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쳤다. 뒤이어 이 소리는 바람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리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도록 했는데 그 후로는 "임금님 귀는 길다." 라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동화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도 전해진다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고 유고슬라비아에도 있다. 임금님이 크게 깨달아 백성의 이야기를 큰 귀로 더 잘 듣겠다고 다짐한 내용은 유고슬라비아 버전이다. 이 외에도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나 심청전 등의 이야기도 다른 나라에 비슷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인류의 공통 정서라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조금 더 사고방식을 넓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세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당나귀 귀를 가진 이가 모두 ‘왕’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자에 대한 민중의 저항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표현의 자유, 나아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사실 ‘잊혀질’ 이라는 것은 피동 표현이 중복되므로 ‘잊힐’ 권리가 맞다)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만 이야기에서 한 쪽 상대방을 ‘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중립적인 논지가 어려우므로 이하에서는 양자를 동등한 입장에서 다루도록 한다.

 

잊혀질 권리란 아직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기록이 저장되어 있는 영구적인 저장소로부터 특정한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자신의 정보가 더 이상 적법한 목적을 위해 필요치 않을 때, 그것을 지우고 더 이상 처리되지 않도록 할 개인의 권리'를 의미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 의 규정으로 법제화 되어 있다. 2010년에 스페인의 변호사인 마리오 코스테하가 구글(Google)과 신문사에 소송을 제기한 바가 있다. 그는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예전 빚 문제와 재산 매각 내용이 나온 것을 두고 해당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구글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기에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고 코스테하는 스페인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그 결과 2014년 5월 13일에 유럽 사법재판소는 구글에게 웹페이지의 링크를 삭제하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이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첫 번째 사례였다.

최근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각종 SNS와 TV 출연을 통해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기 행각이 드러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바로 인터넷상에서의 ‘명예훼손’문제였다. 사기를 당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씨는 자신의 법무팀을 통해 각 포털 사이트에 자신에 대한 내용을 삭제 요청했다. 표현의 자유가 발달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규정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일반 대중은 이씨에 대한 진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씨는 마음껏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있다. 최근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상기’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는 과거에 잘못을 한 사람들을 잊지 말고 인터넷에서 상기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 상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과거의 일을 업로드하여 가해자 및 일반대중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과거에 자신과 관련되었던 기사를 삭제 요청하여 저질렀던 잘못을 숨겨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례들로 판단해보면 잊혀질 권리가 공익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모두 정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잊혀질 권리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뽀빠이 이상용을 기억한다. 우정의 무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통해 많은 아이들을 살렸다. 그러나 그는 억울하게 횡령 사건으로 기소를 당했으며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다. 당시 모든 매체가 이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물론 이는 무혐의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가 무혐의를 받았다는 뉴스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지금 인터넷에 이상용을 검색하면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혐의를 받은 사연에 대해 나오지만 공식적으로 그가 무혐의를 받았다는 기사는 거의 없다. 물론 각 포털 사이트에 횡령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삭제 요청을 하여 해당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어떤 여성은 성인 사이트에서 자신의 부적절한 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삭제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영상들은 워낙 복잡하게 퍼져있고 또한 많은 성인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바람에 결국 완전삭제란 불가능하다. 해당 여성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처럼 잊혀질 권리는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쉽게 판단해보면 잊혀질 권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인정해주고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사실 그 판단을 누가 내리며 또한 그 판단의 공정성은 누가 담보하느냐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것에 관해 유럽 사법재판소의 판결보다 조금 더 빠른 2013년의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노컷뉴스가 원고의 미국 정보원 역할 의혹을 집중 제기하자 원고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웹사이트와 포털의 삭제를 요청한 것이 요지이다. 대법원은 “기사(49건)를 삭제하고 D사, N사 등의 포털 사이트에 해당 기사의 삭제를 요청하라”고 판결한 1심과 원심을 인용하고 노컷뉴스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판례를 통해 기사삭제의 당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대법원은 “그 표현 내용이 ①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닌 기사로 인해 ②현재 원고의 명예가 중대하고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③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라는 두 가치를 비교·형량하면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3단계 심사기준을 제시했다. 위 기준을 통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정치인에 대한 잊혀질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 아닌 일반 사인이 과거 사실을 이유로 현재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애매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사람은 과거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갔었다. 그 후 그는 갱생되어 착실하게 기술도 배우고 학교도 마쳤다. 그리고 그 일이 미담이 되어 기사에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 그가 결혼을 앞두고 이 기사로 인해 예빈 신부와 갈등을 겪게 된다. 즉 신부 측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A는 자신의 기사를 삭제해줄 것을 요청중이다. 이 같은 사례로 보건데 잊혀질 권리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은 문제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1조 제1항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되 동조 제4항을 통해 그것에 대한 한계를 규정했다. 누구나 인터넷이라는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칠 수 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말이다. 그러나 대나무 숲은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 언론은 역할은 남이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로 고통 받을 임금님 또한 배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오해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결코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거짓을 말할 자유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한 채 ‘리트윗’과 ‘공유하기’로 자신의 생각이 아닌 감정을 대나무 숲에 퍼트리고 있다. 대나무가 선비의 상징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정보화 사회에서 당연히 거쳐 가야할 논의다. 그리고 그 중요성의 크기는 성숙한 인터넷 문화에 반비례할 것이다. 무려 200년 전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을 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재점검해보도록 하자.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 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

 

조지형 작가

조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도서출판 큰글사랑 기획실장

주식회사 디엠에코 이사

『어쩌면당신은관심없는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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