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형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11
조지형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11
  • 송영숙
  • 승인 2016.10.31 14: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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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번째 이야기 – 아기돼지 삼형제(원자의 발견과 양자역학, 그리고 전쟁)

열 한번째 이야기 – 아기돼지 삼형제(원자의 발견과 양자역학, 그리고 전쟁)

 

줄거리 : 옛날 옛적에 아기돼지 삼형제가 엄마돼지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돼지가 각각의 집을 짓고 독립하여 살되 나쁜 늑대를 조심하라고 경고를 해준다. 그래서 아기돼지들은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된다. 첫째 아기돼지는 짚으로 집을 지어서 늑대가 쉽게 무너뜨리고 잡혀먹는다. 둘째 아기돼지도 나뭇가지로 집을 지었지만 마찬가지로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셋째 아기돼지는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어서 늑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늑대는 화가나 셋째 아기돼지의 집 굴뚝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아기돼지가 준비해둔 끓는 물에 빠져 황급히 달아난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건축학적으로 보았을 때 집은 튼튼한 재료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세계로 들어 가보면 짚이나 나무, 그리고 벽돌의 구성성분은 큰 차이가 없다. 정말 아주 아주 작은 차이가 있기에 오히려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저 이야기는 물리학자들에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다(물론 읽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오늘은 시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바로 그 재료에 대한 복잡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금이야 우리는 과학시간에 분자-원자-핵 등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 발견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물리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용어의 그른 선택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두며 이 부분에 대해 아는 분들은 꼭 가르침을 주기 원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10년 전에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이라는 과학자가 호텔에서 자살을 했다. 그는 평소에 우울증을 갖고 있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그의 이론에 대한 기존 과학자들의 배척과 비난이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물질은 무한하게 나뉠 수 없으며 결국 아주 작은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정설로 굳혀진 원자론으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당시에 우스갯소리 취급을 당했다. 물론 이런 비슷한 주장을 하는 과학자가 몇몇이 있었지만 어차피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의 발달은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증기기관의 발달로 인해 과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고온과 고압의 증기기관 내부의 물과 증기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예측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 볼츠만은 이미 증기가 수백만 개의 입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종의 방정식을 통해 증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해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파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방정식이라는 것이 수학적 편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으며 볼츠만의 이론을 허구의 소설로 치부해버렸다. 이런 이유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볼츠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죽기 1년 전에 이미 그의 이론이 인정을 받았으나 미처 그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1년 전에 이미 26세의 한 젊은 과학자가 원자의 존재를 논문을 통해 명쾌하게 증명했던 것이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은 1827년에 꽃가루의 작은 입자가 물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이 논문은 꽃가루를 물에 풀어 놓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에 대한 것인데, 꽃가루가 천천히 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퍼카처럼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갔다 움직이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으로 아인슈타인은 원자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즉 아인슈타인은 물이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있고 이 입자가 꽃가루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이 논문을 통해 원자의 크기까지 계산했다. 당시 계산 값은 바로 1/1010m 였다.

 

결국 볼츠만의 원자론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원자의 존재를 통해 이론을 이제 막 발전시키려는 찰나 갑자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1910년의 영국 맨체스터에는 두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 바로 어니스트 러더포드(Ernest Rutherford)와 닐스 보어(Niels Bohr)다. 둘은 성격 등을 포함해 매우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었는데 러더포드는 실험주의자였고 보어는 이론주의자였다. 한편 이미 1896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선이었다. 러더퍼드는 바로 이 방사선에 주목했다. 그는 방사선을 갖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1909년 그는 특별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이를 위해 라듐의 성질을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 라듐에서는 아주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데 러더포드는 그것을 알파선이라고 했다. 라듐은 이 방사선 즉 입자들을 계속해서 밖으로 쏘아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그는 제자들에게 간단한 실험을 맡긴다. 라듐 앞에 아주 얇은 금박을 배치하고 그 뒤에 인광판(phosphor screen)을 설치한 다음 금박을 투과해서 인광판에 도달한 입자의 수를 세는 것이었다. 대부분 입자는 금박을 통과했다. 그러나 러더포드는 아주 가끔씩 통과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입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8,000개 중에 한 개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러더포드는 원자의 세계가 마치 태양계와 같다고 추측했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를 띤 핵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파선 입자들 중 몇은 바로 이 핵에 부딪혀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고 나머지는 그 빈 공간을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8,000번 중에 1번이라는 것으로 핵이 원자보다 1/10,000의 크기라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는 대부분 빈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파입자가 원자를 통과한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몸 전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렇기에 빈공간이 대부분이라는 괴상한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을 전제할 때 기존 물리학에 따르면 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는 언젠가는 그 회전력을 잃고 핵으로 향해야 한다. 즉 원자가 붕괴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기존의 과학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으며 그 때까지의 모든 이론을 수정해야 했다. 이른바 패러다임의 교체였다.

이제 새로운 젊은 과학자들이 원자론을 갖고 구세대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닐스 보어였다. 그는 러더포드에게 달려갔으며 왜 원자가 붕괴하지 않는지 밝히는 것을 자신의 숙제로 삼았다. 그는 원자의 수수께끼를 빛과 연결 지어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물질을 가열하면 빛을 낸다. 그리고 그 빛은 물질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구리는 푸른색, 나트륨은 노란색을 발한다. 이것을 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한다. 보어는 이것을 통해 원자 모델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자 도약(Quantum Leap)’이다. 이 괴상한 이론은 다음과 같다. 보어는 러더포드와 달리 원자를 태양계로 설명하지 않고 고층빌딩으로 설명했다. 맨 아래 1층에는 핵이 산다. 그리고 위층에는 전자들이 산다. 이 때 가끔 전자들이 다른 층으로 순식간에 이동을 하며 전자들이 고층에서 저층으로 내려올 때 빛을 낸다는 것이다. 또한 내려온 그 거리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수소실험을 통해 이것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보어조차도 왜 원자가 빌딩구조를 하고 있는지 또한 왜 양자도약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양자도약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기존 과학자들의 반발을 샀다. 즉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과학자들은 이 젊은 신세대 과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지도자가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20년대 초까지 보어의 이론을 반박하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1925년에 아인슈타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오게 되는데 이를 통해 구세대 과학자들은 다시 반격의 깃발을 올리게 된다.

편지는 보낸 프랑스인 박사는 바로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였다. 그는 전쟁 중에 전파로 원자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파도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방정식으로는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원자 주위에 파일럿 파라는 전파가 흐르는데 이것이 전자를 궤도에 잡아두는 역할을 한다고 논문에 썼다. 즉 파동이 전자를 잡아주기에 원자가 붕괴되지 않으며 또한 양자 도약이라는 개념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프랑스 학자의 논문에 크게 감동받아 젊은 과학자 집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승리를 자신했다. 물론 보어를 위시한 젊은 세력도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양자 도약을 다시 새로운 이론으로 재무장하여 반격을 도모하였다. 바로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의 배타 원리(exclusion principle)였다.

 

파울리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원자는 동일한 구성물로 형성되는데 그렇게 많은 형태와 다양한 특성을 보이는 것일까? 예를 들어 금과 수은은 전자 하나의 차이밖에 없다. 금이 79개, 수은이 80개다. 왜 전자 하나 차이가 두 물질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파울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어의 이론에 수정을 한다. 보어의 이론에 더해 각 층에 들어가는 전자의 수가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자에 전자가 추가될 때 맨 윗 층에 이미 전자가 들어가 있다면 새로운 층이 그 위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원자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며 원자의 성질 또한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타 원리였다. 이를 전제로 그는 지구상 모든 생물의 다양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이 이론도 보어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었다.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를 이유로 아인슈타인의 구세대 과학자 집단은 이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점점 양 진영은 과격하게 상대를 비난했고 승리를 위해 모든 지성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결국 양 집단에 새로운 돌격대장이 임명되게 된다. 신세대 과학자 집단에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구세대에서는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가 나서게 된다.

 

슈뢰딩거는 브로이의 이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는 전자가 에너지의 파장 때문에 너무 빨리 움직여서 구름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한 그 파동을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내었다. 이 의미는 바로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 원자를 묘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다. 이를 통해 신세대 과학자 집단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원자의 세계를 간단하게 표현해줄 수 있었다. 구세대 과학자들은 그 안정감에 매료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원자의 모습을 기존의 이론으로 묘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양자 도약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세대 과학자들은 이 약점을 가만 두지 않았다. 특히 신세대 세력의 새 돌격대장 하이젠베르크는 슈뢰딩거에게 강한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원자를 설명하기 위한 태양계 비유나 고층빌딩 비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기존의 모형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원자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학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이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곱셈은 그 순서가 상관없다. 즉 4*7이나 7*4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에서는 곱셈의 순서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행렬을 이용하여 풀어냈다. 그 결과 수식을 이용하여 원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해낼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수식에 대해 구세대의 과학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 말도 안 되는 수학은 기존의 수학이론마저도 부정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하이젠베르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원자를 물리적 실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에 큰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크게 낙심했다. 그는 슈뢰딩거의 강의실을 찾아 갔다가 공개적인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의 경력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경이로운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왜 원자를 시각화할 수 없는가? 왜 원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가? 그 대답은 단순했다. 그것은 원자가 본질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원자가 갖고 있는 속성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즉 원자의 위치를 알면 그 속력을 알 수 없으며 그 속력을 알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한계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본질 문제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다. 원자의 위치와 속력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더욱 대담하게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다. 원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또한 원자를 관찰하고 있지 않을 때는 원자는 파동처럼 행동하지만 그 위치를 찾으려고 하면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 이 이상하고 모순적인 행태가 바로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이었으며 오로지 수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드디어 1927년 양 진영은 최후의 전투장소로 브뤼셀의 솔베이 학회를 택했다. 여기에 당시 세계의 모든 유명 원자 물리학자들이 다 모였다. 학회 내내 양 진영의 장수들이 차례로 나와 보어의 양자 역학에 대해 격렬하게 싸웠다. 최후의 싸움은 양자의 수장인 보어와 아인슈타인이 마무리했다. 보어는 마지막 날까지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었다. 그리고 결국 보어의 승리로 그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날이 바로 구세대를 신세대가 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자연은 확률과 우연으로 설명되고 원자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사용해야 했다. 그 이후의 원자 물리학은 바로 이 학회의 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다.

 

다시 거시적인 세계로 돌아오자. 오히려 아기 돼지가 집을 무엇으로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물론 당연히 벽돌로 지은 집이 거시세계에서는 더 튼튼하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저 저변에서 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평생 원자와 전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삶을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찰리 채플린과 아인슈타인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를 한다. 이 글은 BBC 다큐 원자의 세계를 참고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며 채플린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은 참 위대해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있죠.”

 

그 말을 들은 채플린이 답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 위대해요. 아무도 당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조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도서출판 큰글사랑 기획실장

주식회사 디엠에코 이사

『어쩌면당신은관심없는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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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르 2016-10-31 18:58:19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
원자이야기는 다시한번 읽고 BBC 다큐를 꼭 챙겨봐야겠습니다~! 저는 이해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