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의 봄 이야기
겨울산의 봄 이야기
  • 이희제
  • 승인 2016.12.1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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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감상 -손종호-

겨울산의 봄 이야기

                      -손종호-

겨울산은 말이 없다.
날선 북풍이 창을 흔들어도
눈보라의 군단이 모든 길을 지워가도
더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홀로 자성의 불을 밝히고 있다.

내려놓을 것 다 내려놓은 후의
무한한 자유,
그 마른 손으로 뱀들의 겨울잠을 지켜주고
동굴 속 다람쥐 한 마리의 아픈 상처를
속죄하듯 돌보고 있다.

빈 가지 끝에 희망의 촛불처럼
매화 몇 송이 밝혀두고
어느 새 홀로 버려진 뿌리 곁으로 내려가
차디찬 한숨을 닦아주고
그 곁에 불씨를 심는다.

시련은 때로 성장의 소중한 길,
눈 쌓인 비탈에 묻힌 한 줄기 눈물은
먼 날 작은 애벌레의 눈을 띄우고
아프게 떠나보낸 단풍잎들조차
언젠가 뿌리털 끝으로 일어서리라.

얼어붙은 캄캄한 허공 위에서
서로의 빈 가슴을 비비며
지상의 외로운 이들을 위해
빛을 뿌리는 별들을 우러르며
겨울산은 홀로 새 아침을 예비한다.

<시작노트>

겨울이 없다면 봄도 그리
큰 기쁨이 되지 못할 것이다.
상실과 이별, 조락과 칩거,
그 고통의 시기를 지나 획득과 만남,
신생과 약동의 봄이 오기 때문이다.

인도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결국 생각으로만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겨울, 어려운 이웃들의 시린 손을 잡아주고
희망의 불씨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단숨에 달려 온 아름다운 나그네요.
가장 큰 겨울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손종호

 

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및

<문학사상>신인상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사랑> 외,

 

연구서 <근대시의 영성과 종교성>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음

 

사진가   - 그르니에 함영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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