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방 - 조향미-
온돌방 - 조향미-
  • 이희제
  • 승인 2017.01.28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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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 이종숙 - 사진가- 김권영 -

온돌방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콤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시감상>

이젠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온돌방.
3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찾았던
시골 외갓집의 향수가 아련히 떠오른다.

아궁이 속에서 땔감이 뜨겁게 태워지는 동안
방에선 우리들도 몸과 마음이 덩달아 뜨거워졌다.
추운 겨울 밖에서 뛰어놀다 들어와선
아랫목에 옹기종기 앉아서 몸을 녹이면
젖은 장갑도 덩달아 김을 내며 익어갔었다.

장작을 지피던 어른들의 사랑이 전도된
온돌의 온기로 야무지게 키워진 아이들은
장마처럼 눅눅하게 젖은 생을 만나도
나팔꽃처럼 금새 활짝 피어날 수 있게 된
따스한 온돌방의 추억에

온돌방처럼 뜨거운 사람이 되어
나로 인해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2017년 정유년에는
온돌방 같은 따스한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이종숙)

 

시감상 -이종숙

 

- 시낭송가

- 윤동주 시낭송 협회 회원

- 글로벌 스피치 포럼 회원

 

사진 - 김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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