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게
- 강희안 -
풀잎은 그대에게
무엇이 되나요
낮달 그리메가 스쳐가는
산정 바위너설에
기대어 보면
풀잎 갈피를 흐르는
바람은
살아있는 화두
능선을 가로지르듯
원심점으로 돌아온
한 점 물초롱새가
피나무 가지에서
제 공명에 떨다가
발 밑의 풀잎을 느낄 때
비로소
그대의 정원으로
날아서 가네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낮과 밤은
먼 들녘으로 닿고
노루귀 수풀 속
낮달과 눈빛 맞대며
서로의 먼 거리에서
손짓만 하다가
한 줄기 바람 불 때
그대는 풀잎에게
무엇이 되나요
【시 감상】
이 신산스런 현실을 안간힘으로 견디는 사람에게
과연 소중한 존재는 누굴까요?
어떤 이에게는
한 떨기 풀잎이 될 수도 있고
한조각 낮달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피나무 가지에서 떠는 새의 노래일 수도 있겠지요.
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것도
서로 각기 떨어져 빛나고 있는 것 같지만,
투명한 인연의 줄로 꿰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요?
사는 일도 늘 이와 같아서
서로의 먼 거리에서
애틋한 손짓으로 깊어가는 것은 아닐지요.
그때 문득 불어주는 바람의 매파에게
한 줄기 아릿한 그리움의 사연을 전하고 싶은
아슴아슴 사무치는 이 봄날입니다. (강희안)
- 강희안 -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강희안(姜熙安) 1990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으로 등단.
시집 - 오리의 탁란 출간
-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 거미는 몸에 산다
- 나탈리 망세의 첼로
- 물고기 강의실 등
논저 - 석정 시의 시간과 공간
- 새로운 현대시작법
- 고독한 욕망의 윤리학
- 새로운 현대시론 등
공저 - 현대문학의 이해와 감상,
- 문학의 논리와 실제,
- 『유쾌한 시학 강의』
편저 - 『한국 시의 전당 헌정시 100선집』
현재 계간 『시와미학』 편집주간 및 배재대 교수
사진가 - 온새미로 김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