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시인 윤원희선생님과 나 그리고 살가운 문학세상이여
(문학칼럼) 시인 윤원희선생님과 나 그리고 살가운 문학세상이여
  • 김숙연 기자
  • 승인 2009.12.14 14: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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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 문향 文鄕 의 은사이신 구인환 서울대 교수님으로 부터 문학적 영향과 개인지도를 받으며 공부하여 현재 책 10여권을 내고 부족하지만 문학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길을 따라 나선 나의 한없는 방랑의 길, 늘 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애용하 는 ‘영원한 보헤미안’ 으로 길을 걸으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길을 따라 나선 영원한 길은 사람의 인연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이 이른바 ‘인생만사 회자정리(人生萬事 會者定離) 라고 하지 아니던가.

문학청년 서울에서의 나의 지난 스무살 시절. 책과 시름하며 데.칸.쇼 (데카르트, 칸트, 쇼팬하우어)의 철학적 허무의 늪에 깊이 빠져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과, 낭만, 사랑, 막걸리로 일관하던 시절 각종 세미나와 전국 문학순례다 하며 동행하며 자주 뵈었던 지금은 작고하신 이숭녕 국문학자, 미당 서정주 선생님, 정원모 문화부장관님 등은 그 당시 나의 높은 하늘이자 드넓은 바다였다.

또 객주의 김주영 작가님, 하늘과 바람의 시 윤동주 시인의 2대 애제제(愛弟子)로 분류되는 연희문단의 신동욱, 마광수 교수님 등과 잦은 만남은 나를 작은 시야에서 큰 문원(文原)의 세계로 끌어 들였다.

이런 인연에 끈은 나를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사십대로 끝이 없는 길로 몰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윤원희 시인’을 만나게 하는 인연의 ‘길’은 오늘날 나에게는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아마도 5-6년 전 일께다.

나는 서울의 어느 월간 문예지에 깊이 관여를 하며 문예작품 심사와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리면서 각종 크고 작은 행사를 윤 선생님과 함께 기획연출과 행사진행을 번갈아 보며 문우 (文友)의 정을 돈독하게 키우며 지냈다.

윤 선생님은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따듯한 인간미와 차분한 성품을 지닌 분인데 이 올 곧은 성품이 이 분의 압권(壓卷) 이었다.

사람을 따르게 넉넉한 성품으로 편안한 인상을 지녀 정감이 가는 분 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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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zhnmrxiqfv@gmail.com 2013-06-18 16:46:54
I will speak with you once again, but now tell your mistress Im come." The wife of Cassim, on learning the fate of her husband, broke out into cries and tears, but Ali Baba offered to take her to reside with him and his wife if she would promise to keep his counsel and leave almost everything to Morgiana; whereupon she agreed, and dried her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