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형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1
조지형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1
  • 송영숙
  • 승인 2016.05.31 17:54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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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형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1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에 앞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시작하고자 한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시행한 바 있다.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이 나중에 다시 알콜중독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비율이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60%가 넘는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딸은 어릴 적부터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며 그를 달랠 수 있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습득했다. 나중에 자연스러운 그녀의 이런 모습이 알콜중독자가 될 개연성이 큰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무의식은 이렇게 무섭다. 따라서 교육적 관점에서 우리는 이 부분에 한번쯤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나는 특히 어릴 적 우리의 무의식을 형성했던 여러 가지 원천들 중에서 옛날이야기 즉 동화에 주목했던 것이다. 물론 다음부터 이야기할 옛날이야기들이 모두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절대 읽어주지 말아야할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릴 적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으며 지금의 우리를 다시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최근 인문학의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인문학은 지식이라기보다 지혜에 가까우며 지혜는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생각이란 비판적 사고를 전제로 하며 이는 사고의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다. 인류의 인구는 이제 70억이 넘으며 하다못해 대한민국의 인구도 5000만이 넘는다. 이 엄청난 다양성에 따른 욕망을 억제·통제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정답이 아니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열풍은 그 시기의 적절성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일주일에 하나씩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를 소개할 것이다. 그 옛날이야기를 통해 자칫 아이들이 어떤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지와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볼 수 있는지를 제시할 것이며 그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 철학, 역사, 예술 등의 인문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정치학, 행정학 등의 사회학, 나아가 물리학, 화학 등의 관점도 소개할 것이다. 독자들은 필자의 이런 관점을 하나의 예시로만 생각해주길 바라며 그렇기에 비난이 아닌 비판은 충분히 수용할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 - 토끼와 거북이(최선의 노력보다 최선의 조건이 더 중요하다)

 

줄거리 :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했다. 빠른 토끼는 시작하자마자 거북이를 저 만큼 앞질렀다. 거북이와의 차이가 많이 나자 토끼는 거북이가 쫓아오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여 낮잠을 자게 된다. 거북이는 끝까지 열심히 달려 결국 토끼를 앞질러 달리기 경주에서 이긴다는 내용.

일반적인 교훈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지만 다른 교훈은 ‘만일 당신이 평생 불리한 경주에서조차 끝까지 열심히 한다면, 상대방이 자만하고 있을 때야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정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경주를 하면 안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아무도 왜 둘이 달리기 경주를 하는지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리한 조건에서 경주를 하는 거북이들에게 열심히 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거짓 선전을 하고 있다. 이런 근본적인 어긋남을 모른 채 우리 거북이들은 이미 왜곡된 시장에서 희망을 꿈꾸며 열심히 달리고만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단점은 모든 경쟁에 ‘시장’이라는 원리로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에 있다. 대형마트에 밀려 문을 닫아야하는 할머니의 구멍가게에도 이 원리는 ‘합리적’으로 적용된다. 이런 경우에 약육강식의 법칙을 ‘자연스러움’으로 소개하곤 한다. 그러나 사자는 토끼를 먹어야 산다. 강자가 약자를 먹어야 사는 구조와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있는 구조는 엄연히 다른 체계다.
 

점점 사회가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거북이들은 토끼가 낮잠을 자길 기대하며 세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는 시간제한이 없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며 젊은 청춘들이 아름다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거북이들은 저 멀리 가버린 토끼를 보며 절망에 빠져 포기하기에 이른다. 약육강식이나 경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할 수 없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다만 나쁜 약육강식이나 나쁜 경쟁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토끼는 토끼끼리, 거북이는 거북이끼리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골목상권을 지켜줘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지형 작가


조지형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도서출판 큰글사랑 기획실장

주식회사 디엠에코 이사

『어쩌면당신은관심없는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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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용 2016-06-02 20:05:35
누구나 어렸을적, 읽어봤을 법한 동화의 재해석.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봤다는것 만으로도 참신하다 생각듭니다.

앞으로 어떤 동화가 어떤식으로 재해석 될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

조지형 2016-06-02 19:26:03
그렇군요. 오히려 그런 분류가 사고방식을 만들수도 있겠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조지형 2016-06-02 19:25:15
감사합니다. 더 고민하고 더 깊이 생각해서 다음 칼럼을 올리겠습니다!

조지형 2016-06-02 19:24:38
맞습니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많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지형 2016-06-02 19:23:39
수준 높은 댓글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